어두운 돌바닥 위에 놓인 황동 나침반과 바위를 피해 휘어져 나아가는 경로
커리어

GRIT이 있다는 건,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

GRIT은 무조건 포기하지 않는 능력이 아니다. 무엇을 오래 붙들어야 하는지 판단하고,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을 바꾸면서도 그 결과를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에 가깝다.

“GRIT이 없어.”

“너는 GRIT이 필요해.”

이런 말을 들어보셨거나, GRIT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해보셨나요?

그렇다면 우리는 GRIT을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요?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것, 힘들어도 참고 버티는 것, 한 번 정한 목표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 보통은 이런 의미를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앤절라 더크워스와 연구진은 2007년 발표한 논문에서 GRIT을 ‘장기적인 목표를 향한 열정과 끈기’로 정의했습니다. 실패하거나 성장이 정체되고, 때로는 지루함을 느끼더라도 오랫동안 관심과 노력을 유지하는 성향을 의미했습니다.

이 개념이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진 것은 2016년 영문판으로 출간된 더크워스의 책 《Grit: The Power of Passion and Perseverance》를 통해서였습니다. 당시 제 주변에서도 스타트업과 도전, 실패를 버티는 힘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그 무렵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능이나 재능만으로는 성취를 설명할 수 없고, 오랜 시간 노력을 지속하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적어도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힘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GRIT이 많은 관심을 받은 만큼 비판도 뒤따랐습니다.

GRIT만으로 성공을 설명할 수 있을까

2017년 발표된 GRIT 연구 메타분석은 88개 독립 표본, 66,807명의 데이터를 종합했습니다. 분석 결과 GRIT과 성과 사이에는 관련성이 있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만큼 강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GRIT은 기존의 성격 특성인 ‘성실성’과 상당히 겹쳤고, 두 구성 요소 중에서는 ‘관심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보다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 성과와 더 밀접하게 연결됐습니다.

이 결과만으로 GRIT이 의미 없는 개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GRIT 하나만으로 성공을 설명하거나, GRIT이 높은 사람은 성공하고 낮은 사람은 실패한다고 말하기에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죠.

GRIT을 훈련하면 실제 성과가 좋아지는지도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2024년 보건의료계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 문헌고찰과 메타분석에서는 GRIT 개입을 비교할 수 있었던 시험이 두 건, 참여자는 70명에 불과했습니다. GRIT 점수가 좋아지는 경향은 있었지만 통계적으로 분명한 효과라고 보기 어려웠고, 학업 성과가 개선되는지 판단할 근거도 부족했습니다.

무엇보다 끈기가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2015년 발표된 ‘비용을 발생시키는 끈기’에 관한 연구에서는 GRIT이 높은 사람들이 실패 중인 상황에서도 더 오래 과제를 지속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문제는 그 지속이 때로는 금전적인 손실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오래 달리는 것도 끈기일까요?

포기하지 않는 태도는 멋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목표가 잘못됐거나 현재의 방법으로는 성과를 만들기 어렵다는 근거가 쌓이고 있는데도 계속 버틴다면, 그것은 GRIT이라기보다 고집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무엇을 오래 붙들 것인가

오늘날 GRIT을 이야기할 때도 주로 열정과 끈기를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는 능력보다 무엇을 오래 붙들 것인지 판단하고, 방법을 바꾸면서 다시 노력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위 목표는 유지하되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령 목표가 어떤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처음 기획한 기능을 끝까지 만드는 것이 반드시 책임감 있는 행동은 아닙니다. 기능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면 계획을 바꾸거나,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다시 시도하는 편이 목표에 대한 책임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모든 실패를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신호’로 해석한다면 어떤 목표도 오래 이어갈 수 없습니다. 생각보다 성과가 늦게 나타나는 일도 있고, 실패를 거치며 실력이 쌓이는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버티기가 아니라 판단입니다.

지금 겪는 어려움이 조금 더 연습해야 한다는 신호인지,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신호인지, 아니면 목표 자체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신호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물론 실제로는 이 셋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늘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책임감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제가 생각하는 GRIT은 결국 책임감에 가깝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 살피고, 그 책임을 얼마나 제대로 챙기는가.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원인을 확인하고, 계속할지 바꿀지 그만둘지를 다시 결정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내린 결정의 결과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책임감은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거나, 실패를 전부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태도가 아닙니다. 도움을 요청하고, 부족한 환경을 바꾸고, 때로는 목표를 내려놓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더크워스 역시 현재는 GRIT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사람을 둘러싼 환경과 동료, 멘토도 함께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더크워스의 GRIT 공식 설명

책임감 있는 사람은 반드시 같은 방법으로 오래 버티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목표를 잊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인정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버티는 동안에도 계속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누군가에게 “GRIT이 부족하다”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 목표를 포기한 것일까요? 아니면 목표에 도달하는 다른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일까요?

제가 오래 붙들고 싶은 GRIT은 끝까지 같은 길을 고집하는 힘이 아닙니다. 목표의 의미와 그 결과를 끝까지 돌아보는 힘, 그리고 필요하다면 경로를 바꿔 다시 출발하는 책임감에 더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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